춘천의 지명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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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의 역사·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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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의 지명유래

근화동(槿花洞)

무궁화가 많이 있던 지역이라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갯대

근화동 당간지주(幢竿支柱)를 갯대라고 불렀다.

소양강가에 있는 이 당간지주는 보물 제76호로 지정되어 있다.

갯대배기

소양강가에 있는 들을 갯대배기라 불렀다.

즉 당간지주가 서 있는 들이었으므로 갯대배기라 했다.

강변대로

춘천역과 춘천시외버스터미널을 연결하는 도로로서 온의동과 남춘천을 연결하는 도로와 이어지는 강변대로(江邊大路) 35m폭으로 개설된 도로.

공지교(孔之橋)

공지천에 있는 다리.

6·25한국전쟁 직후에 공지천에 다리를 놓았다.

지금은 그때의 다리 교각위에 팔각정을 세웠으며, 새로운 다리를 놓고 있다.

닥개 근화동 앞에 있던 개.

의암호가 생긴 이후에는 의암호 밑으로 잠겨버렸다.

대바지

옛날에 대밭이 있었으므로 대바지라 했다.

한자로 죽전리(竹田里)라 했다.

뚝너머

소양강이 범람하면 춘천읍내로 물이 넘쳐 들어오므로 뚝을 쌓았다.

뚝너머의 마을을 그냥 뚝너머로 불렀다.

말무덤터

말이 죽어서 물었다는 터.

실제로 말이 죽어서 물었던 터가 아니라 옛무덤(고총)이 있었으므로 말무덤이라고 불렀다.

중도의 적석총도 말무덤이라고 부른것과 비슷한 이름이다.

명당구미

아래닥개와 웃닥개 중간에 있던 소.

소양강이 근화동앞으로 흐르면서 물구비를 만들었는데 그 둑 안쪽으로 소가 있었다.

춘천폐수처리장 윗쪽에 있었다.

석동거리

근화동 앞에 있던 들.

성뚝

소양강 물이 읍내로 들어오지 못하게 막은 뚝.

속갯보

근화동 들 복판에 있던 보.

논에 물을 대기 위하여 보가 만들어졌었다.

아래닥개

닥개 아래쪽에 있는 개.

앞두루

앞두루가 근화동으로 이름이 변했다.

왜둔지(瓦屯地)

진흙으로 된 들.

전평리(前坪里)

순수한 우리 이름인 앞두루가 전평리(한자식)로 변화는 과정을 보여주는 지명이다.

춘천역

경춘선(京春線)의 기차정거장.

춘천의 시발역이며 종착역.

근화동 절터

소양강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 보물(寶物) 제76호 당간지주와 석등(石燈)의 지대석(地臺石)으로 보이는 조각이 연화문대석(蓮花紋臺石)이 이곳에 있어 옛날부터 절터 였음을 말해줄뿐 별다른 흔적은 찾을 수 없으나 이 주변에 지하에서 옛날기와편이 나왔다고 한다.

춘천주한미군부대캠페이지

6·25한국전쟁 직후부터 춘천은 군사요 충지가 되어 왔다.

1·4후퇴 이후 전선이 교착되고 수복지가 확정 되면서 춘천에는 주한미군부대가 근화동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주한미군캠페이지는 한때 유도탄부대가 있었고 헬리콥터부대도 배치되었다.

캠페이지 안에는 비행장이 있어서 춘천의 항공기지를 상징한다.

중국비행기가 비상착륙, 중국에도 알려지게 되었다.

일반에서는 그냥 미군부대라고 부른다.

할미바우

소양강 할미여울 뒤에있는 바위.

할미여울

소양강에 있는 여울.

이디오피아 참전기념비

6·25한국전에 참전한 유엔의 우방 16개국중 주로 화천의 산양리, 인제의 문등리와 철원, 김화등지에서 253회의 전투를 치른 이디오피아군(1개대대)의 참전 기념과 침략자에 대한 자유 우방의 승리를 상징하기 위하여 건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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