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의 지명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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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의 지명유래

의암리(衣岩里) 옷바우가 있었으므로 옷바우, 칠바우 의암(衣岩)이라고 불렀다.

아래옷바위

아래옷바우.

옷바위 아래쪽에 있는 마을.

하의암(下衣岩)
윗보바위

웃옷바우.

옷바위 위쪽에 있는 마을.

상의암(上衣岩)
옷바위(衣岩)

의암리 앞 강가에 있는 바위.

복두산

노적봉이라고 부른다.

꼭대기가 노적처럼 생긴 산.

쇠목여울

쇠목처럼 생긴 여울.

지금은 의암호 물밑에 잠겼다.

수리봉

독수리처럼 생긴 봉우리.

수리봉굴

수리봉 밑에 있는 경춘선 기차굴.

신연교(新延橋)

신연강에 놓인 다리.

의암댐

의암리에 있는 댐.

옷바위의 한자 표기인「의암」의 이름을 따서 의암댐이라 함.

의암교

경춘4차선국도 개설과 함께 새로 놓은 다리.

의암터널

경춘국도 4차선을 확장하면서 2개의 터널을 뚫어 춘천시내로 진입하는 도로의 관문터널이 됨.

칠바우

옷바우.

의암리를 칠바우라 부르기도 함.

팔미리(八味里) 발미라고도 부른다.

모오리(毛五里)

발미 동쪽에 있는 마을.

작은설미(소선동)

설미의 작은 마을.

설미는 깨길(깨끼리) 동쪽에 있는 마을.

소선동(小仙洞)이라고도 부른다.

큰설미(대선동)

설미의 큰 마을.

대선동(大仙洞)이라고도 부른다.

깨길

각길(却吉), 깨꺼리, 깨끼리라고 부르기도 한다.

팔미리 서쪽 끝에 있는 마을.

발미

발미(跋尾) 팔미리라고 부른다.

발미에 있는 개울은 발밋개울.

매봉산

매처럼 생긴 산.

모란봉

벼락재라고도 부른다.

신남(新南)에서는 벼락재라 부르고 발미에서는 모란봉이라고 부른다.

사실기 고개

발미 부근에 있는 고개.

연포

발미에 있는 들.

영갯버덩

발미에 있는 버덩.

오소리봉

옛날 홍수 때 오소리가 앉을 만큼 봉우리가 남았었다는 산.

장턱거리

정월 대보름 때 줄다리기, 씨름 등을 하던 터.

정의공 묘

청풍 김석연의 묘.

증리에 있던 것을 옮겨왔다 함.

한골 개울

혈동리(穴洞里)의 한골에서 내리는 냇물.

황골

큰설미에 있는 골짜기.

혈동리(穴洞里) 설꼴 또는 혈동이라고 불렀다.

오봉(五峰)

오뵝이라고도 부른다.

설골 동북쪽 산너머에 있는 마을.

덕만이(德蠻里)

덩마니라고 부른다.

혈동리의남쪽 끝에 있는 마을.

덩마니에서 동산면 군자리 두뭇골로 넘어가는 고개는 덩마니고개라 한다.

김유정의 소설에도 덩마니가 나온다.

혈골

설꼴, 혈동리를 혈골이라 부른다.

한골

설꼴 서북쪽에 있는 마을.

한곡(汗谷).

한골고개

한치현(寒峙峴) 한꼴에서 남산면 수동리로 가는 고개.

갈미봉골

고깔처럼 생긴 봉우리 밑에 있는 골짜기.

나가짓고개

남산면 수동리의 나가지로 가는 고개.

증리(甑里) 실내, 실레라고 부른다.

실레의 뜻에따라 증리라 하여 신남(신동)면에 편입되었다.

신남면 사무소가 있었으므로 신남이라 부르기도 한다.

대평(大坪)

한두루라고 부른다.

큰 들이 있는 마을.

한두루를 흐르는 개울은 한두루개울, 농경지정리가 잘되어 있다.

대평은 한두루의 한자 표기.

거문관

거문가니라고 부른다.

실내 서쪽에 딸린 작은 마을.

신트랑

신드랭이.

화기암(靴機岩).

신틀바우가 있는 마을.

역전

신남역(新南驛) 앞에 있는 마을.

신동면사무소 앞에 있는 경춘선 완행열차가 서는 곳.

아랫말

하리(下里).

실내 아랫쪽에 있는 마을.

상재이

상증(上甑) 실내 위쪽에 있는 마을.

삼포(三浦)

옛날에 삼포(參圃)가 있었다.

원창리 새술막으로 통하는 아스팔트가 나 있다.

김유정의 소설「소낙비」에 삼포가 나온다.

새고개

샛고개, 신촌리로 가는 고개가 있는 마을.

강신재

옛날에 강신제(降神祭)를 지냈다는 재.

담안

정의공이라는 사람의 무덤이 있던 안쪽의 골짜기.

담안에 있는 우물은 담안우물.

마삼재

실내에 있는 산골짜기.

백토고개

흰 흙이 있는 고개.

김유정의 소설에는 백두고개라 했다.

수하릿골

송하곡(松下谷), 송화곡(松花谷) 실내 안쪽의 마을.

소나무가 많아 소나무꽃가루가 떨어져 쌓인다 한다.

수하리골을 흐르는 냇물은 수하리골 개울.

온수들

따뜻한 물이 나온다.

온수(溫水)가 솟아 마을 아낙네들의 빨래터가 되기도 했다.

금병산

실내마을 동쪽으로 솟은 산.

병풍을 두른듯 아름답다 해서 금병산이라 한다.

김유정 생가터

소설가 김유정이 탄생했던 집터.

신동면 증리 427번지.

김유정기적비(金裕貞紀蹟碑)

1978년 3월 29일에 제막한 김유정을 기리는 기적비이다.

펜모양의 자연석을 세웠다.

김유정이 사용하던 펜모양을 닮았다.

김유정 느티나무

김유정이 고향 실레마을에 머물러 농촌운동을 하면서 느티나무를 심었다.

1932년 김유정이 23세 되던 해이다.

김유정 느티나무는 해마다 푸른 잎을 무성하게 피우고 있다.

김유정 금병의숙터

김유정은 1932년 23세 되던 해에 실내마을에서 야학당(夜學堂)을 열었다.

김유정 문학산실 표징

한국현대문학 표징사업의 하나로 한국문인 협회에서 1995년 12월 2일 세웠다.

비문은 『이「금병의숙」터는 1930년 단편소설의 금자탑을 세운 김유정선생께서 야학당을 열고 농민계몽운동을 펴면서 〈산골나그네〉〈총각과 맹꽁이〉등 작품 구상을 했던 문학 산실이다.

〈만무방〉〈소낙비〉〈동백꽃〉〈금따는 콩밭〉등 주옥같은 작품의 무대이기도 하다.

연자방아

옛날에 사용하던 연자방아가 김유정기적비 옆에 놓여있다.

연자방아는 증리마을의 고색창연함을 보여준다.

진병산전적비

진병산(陳兵山)은 임진왜란 때 강원도 조방장(助防將) 원호(元豪)장군이 진을 친 산이라 해서 진병산이라 했다.

진병산은 금병산이라고도 부른다.

금병초등학교

실레에 있는 초등학교.

김유정이 야학당을 세우고 문맹퇴치운동을 전개할 때 인가를 받아 금병의숙을 세웠다.

금병초등학교는 금병산과 금병의숙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

금병학교는 농악으로 이름나 있다.

정족리(鼎足里) 솟바리, 정족이라고 부른다.

지형이 솥다리 같으므로 솟바리, 한자로 표기해서 정족이라 했다.

고창말

솟바리 동쪽에 있는 마을.

고청리(古靑里)가 고창말로 바뀌었다.

본래는 고청말.

솥바리

솟바리.

한자로 표기해서 정족리.

원래의 표기 솟바리가 솥바리로 변했다.

방축개

방축깨라 부른다.

방축 부근에 있는 마을.

솟바리에 있는 들을 든던두루.

솟바리 뒤에 있는 산은 뒷벌.

솟바리에 있는 골짜기는 도장골.

솟바리에 있는 들을 섬뚜루.

사자우

사자유라 부른다.

솟바리에 딸린 마을.

양지편

양지 바른 곳에 있는 마을.

지품(地品)

새미 남쪽에 있는 마을.

정병산(正屛山) 밑에 있어 골이 깊다.

구실

솟바리의 서남쪽 골짜기에 있는 마을.

국사봉(國士峰)

솟바리에 있는 산.

당고개

서낭당이 있던 고개.

돌틉

돌이 많은 곳을 개간한 들.

방애재

솟바리 부근에 있는 재.

보광사(普光寺)

안화산 있는 절.

새미(新岩)

솟바리 부근에 있는 마을.

새미에 있는 들을 새미들.

안마산(鞍馬山)

안화산이라고도 부른다.

말의 안장처럼 생겼다.

한석개

정족리에 있는 들.

한석개 들에 있는 마을.

화챗간터

옛날에 상여집이 있던 골짜기.

개처네골

솟바리에 있는 골짜기.

덧고개

덫을 놓았던 고개.

두들개

화채간터 옆에 있는 골짜기.

안골

솟바리 안쪽에 있는 마을.

준전두루

솟바리 부근에 있는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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